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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현종(991년(성종10년)~1031년(현종22년))

고려 제8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010년~1031년으로 자는 안세이다. 태조의 여덟 번째 아들인 안종 욱 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태조의 아들 대종 욱 의 딸 헌정왕후 황보씨이다. 헌정왕후는 본래 경종의 비 였는데, 경종이 승하하자 왕륜사 남쪽의 사제에 나와 살다가 이웃에 살던 안종 욱과 사이에 현종을 낳았다. 자라서는 대량원 군에 봉해졌으며 목종 때에는 왕에게 후사가 없었으므로 태조의 후손 가운데 유일한 왕위 계승권자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목종의 생모인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사통하여 아들을 낳게 되자 그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자 획책하였고, 그들에 의해 승려가 되어 개경의 숭교사에 유폐되었다. 그 뒤 1006년(목종9년) 천추태후와 김치양에 의해 삼각산 신혈사에 유폐되었는데 그 때 신혈사의 노승 진관이 여러차례 목숨을 구해 주었다고 한다. 신혈사에 머문지 3년 만인 1009년(목종12년) 강조의 정변에 의하여 목종이 폐위되자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현종은 왕위에 올라 고려왕조의 기틀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내적으로는 국초 이래 계속되어 온 중앙집권화 정책을 마무리하였는데 특히 지방제도의 정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고려의 지방제도는 982년(성종2년) 전국에 양주, 광주, 충주, 청주, 공주, 진주, 상주, 전주, 나주, 승주, 해주, 황주 등 12목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정비되었는데, 이것을 현종 9년(1018년)에 더욱 정비하여 4도호부, 8목, 56지주군사, 28진장, 20헌령 등의 체제로 개편함으로써 전국에 대한 통치체제를 거의 완성하였다. 이와 함께 성종 때 두었던 개성부를 없애고 대신 경중 5부와 경기를 두었으며, 경기는 다시 개성현과 장단현으로 나누고 개성현에 속현 3개, 장단현에 속현7개를 각각 딸리게 함으로써 개경 및 경기 지방에 대한 통치체제도 완성하였다. 지방제도의 정비와 함께 지방세력에 대한 통제책도 마련하였는데, 첫째로는 정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주현의 크기를 정하고 그에 따라 향리의 수를 정하였고, 둘째로는 향리들이 입는 공복을 제정하여 향리의 신분과 등급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현종 때에는 거란의 침략을 두 차례 당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이보다 앞서 성종 때인 993년(성종12년) 거란의 제 1차 침입을 당하여 송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거란과 사대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강동 6주를 돌려받고 강화를 맺은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고려와 송의 비공식적인 관계가 계속되자 거란의 침략이 재개되었던 것이다. 거란의 제 2차 침입은 현종이 즉위한 직후인 1010(현종1년)에 강조의 정변을 문죄한다는 구실로 시작되었다. 이 때 통주에서 강조가 패함으로써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개경에서 나주로 가는 길에 전에 머물렀던 삼각산을 거쳐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 전쟁은 현종이 직접 거란에 가서 친조할 것을 조건으로 종식되었지만, 거란군이 물러간 뒤에도 국왕의 친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송에 사신을 보내 외교관계를 재개를 요구하기까지 하였으므로 거란은 현종의 친조와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며 1018(현종9년) 제 3차 침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때는 고려군이 선전하여 거란군을 막았고 귀주에서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거란군을 거의 전멸시키는 승전을 거두었다. 이러한 승리를 바탕으로 이듬해 거란과 강화를 맺었고 이후 평화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여 13세기 중엽 몽고의 침입이 있을 때까지 약 2세기 동안 평화를 유지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능은 선릉으로 경기도 개풍군 중서면 공력리 능현에 있으며, 시호는 원문이다.